2022 정연심(홍익대학교 교수), 여성 미술가들의 추상 회화 (KOR)

여성 미술가들의 추상 회화 

정연심 (홍익대학교 교수)

 


1971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 “ 지금까지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나?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라는 다소 도전적인 에세이를 발표했다필자는 박사 논문의 지도 교수였던 노클린의  말을 생각해 보면서 지난10 동안 단색화에서 여성미술가는 존재하지 않았는지 선생님의 말을 되새겨볼 기회가 많았다나는 국내에서 그런 생각을 했지만 해외에서도 분명 미술사가들이나 큐레이터들이 “여성” 단색화 작가가 유독 눈에 띄지 않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이러한 목소리를 찾아보기 위해 이번 전시는 도스 갤러리에서 일종의 선언문처럼혹은 여성미술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목적으로 기획된 ‘여성미술가들의 추상이라는 주제를 다루어본다 주제에 비해서 공간 등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세대별로 여성 미술가들의 추상화를 추적할  없지만 명의 작가들은 추상을 다루는 작가적 “특이성 “독자성” 하에서 선정되었다
   화가 윤미란은 2011 인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고 지난 10 동안 공개적으로 작품을 보여준 적은 별로 없었다그의 작품은 종이 자체의 텍스트에 주목하고 있으며한지를 손으로 하나씩 자르고  붙이는 수행적 과정을 통해서 ‘몰입 이른다화면은 크고 작은 사각형의 그리드를 구성하며 분할과 경계포용의 선을 만들어간다여성 단색화 작가를 발굴해 나가는 리서치 과정에서 새롭게 재평가할 작가로 윤미란에 주목하게 되었다윤미란은 한지의 표면과 물성을 이용하지만 두텁게 화면을 구성하는 단색화가 김태호와 달리,균질적인 화면을 구축한다그리드  자체가 모더니즘 회화의 아이콘이 되지만윤미란은 그리드의 구성에 물리적심리적 시간성을 더한다그는 박서보하종현정상화  다음 세대에 속하지만 다양한 추상전에 참여한  있다
   포스트 페미니스트 세대이자 포스트 인터넷 세대를 대표하는 미술가인 윤향로 작가는 2020년에는 동시대 문화 내에서 여성의 일상적 경험과 미술사 등을 ‘캔버스들이라는 주제로 다뤘다그는 만화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며대상을 스크린 캡쳐하듯이 포착하는 <스크린샷연작 등을 제작했다작가는 다양한 장르  실험을 통해 ‘유사 회화 새로운 매체성을 구축해 나간다그는 디지털 문맥을 회화적 실천 안으로 끌어들여 주변의 ‘그림들이나 이미지를 회화적 스크린으로 확장시킴으로써 디지털 세대의 회화를 새롭게 정의하는 여성미술가이다이미지들은 끊임없는 편집과 재가공을 통해서 새로운 이미지로 출현되는데이번 전시에서는 신작인 등을 전시한다윤향로에게 추상은 대중매체와 디지털 문화의 다양한 문맥을 읽어내는 여정이자 해석의 근거로 작용하며이야기가 있는 회화적 공간여성의 목소리를 중첩시키는 사적그리고 공적 공간이기도 하다
회화를 공부한 김보경 작가는   전만 해도 모노톤의 모노크롬 회화를 제작했다이러한 추상 작품들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반모노크롬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한 작품으로 캔버스에서 흘러내리는 물성과 얼음  가변적이고  물질적인 재료를 사용했다그에게 추상은 변화하는 시간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공간으로회화적 안료에 더해 동시대의 삶과 연관된 안료를 더함으로써 존재 의미를 더한다시간성을 겹겹이 쌓아나가는 회화적 행위에는 그가 사용하는 물감만큼이나 모래와 같은 다른 재료의 흔적 또한 중요하다그가 사용하는 모든 색채는 개인적 경험과 자연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 체화된 결과물이다
김지민 작가는 영국에서 10대를 지내고 해외를 베이스로 활동하다    국내에 귀국했다그는 흔들리는 샹들리에 키네틱 작업과 회화 작품 축으로 작업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침묵의 >이라는 회화를 선보인다.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말할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침묵 회화적으로 묵직한 선의 먹물을 통해서 표현되었다천에 먹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섬세한 과정은 헬렌 프랑켄타일러(Helen Frankenthaler, 1928~2011) 추상회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청소년기에 여러 문화에서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그에게 침묵은 무의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야기 공간인 셈이다김지민의 회화는 여러 문화권에서 생활하며 얻었던 문학적고전적 참조를 바탕으로  것으로삶과 예술의 조응을 건축적 공간과 회화적 공간 내에서 담아내고 있다일종의 템플 구조를 가진 침묵의 선이 만들어내는 회화적 구축물은 김지민의 정신적 위안처이자 도피처이다
   이들 여성 미술가들의 추상회화는 개인적인 독백과 내러티브가 담겨 있다작가 모두 자신이 속한 세대가 다르고 성장한 문화나 장소도 다르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반응과 모놀로그가 이들의 회화 작품 안에 가득  있다이미지가 없는 형상이 없는 구체적 대상이 없는  보이지만각기 다른  명의 여성 미술가들이 그어나가는 선과 색채공간 구조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한 일기이자 이야기 공간이다.